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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역자: 양윤옥,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현대문학 (2012)

운가령 2016. 9. 14. 20:56

 





 

그 폐가로 가자는 말을 처음 꺼낸 건 쇼타였다아주 괜찮은 헌 집이 있다고 했다.”

 

  소설책을 읽은 게 실로 오랜만이다딱딱하고심오하고회의적인 소설책을 읽었다면다음 소설책을 잡을 순간은 아마 New Year's Eve에 잠깐 머릿속으로 스치듯이 결심되어지지 않을까하지만 다행히도 언급 면과 정반대다가볍고감동적이고굴곡 없이 행복감을 주는 책이다카타르시스가 없지만 (후반부에 약간?) 요즘과 같이 사사건건에 민감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대만족이다책 초반부부터 전체적으로 굉장히 soft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생각난다한 동네에서 이뤄지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나날들하지만 흡사 폐가 같은 가게에 들어서자 모든 것이 특별해진다.

 

 보는 동안 직접적으로 세 가지 영화가 생각났다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썸머 타임머신 블루스(2005)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안타깝게도 위의 두 개는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다역시 글로 저장하고 다시 봐야...ㅠㅠ). 소재가 같으니 분명히 비슷한 내용과 intuition을 준다하지만 다른 것과 다른 이 책만의 특징이 있었다.

 

 소설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구성력이 뛰어나다분량도 그렇고넘어가는 면이 매끄럽다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시점이 바뀌는데퍼즐이 맞춰지듯이 내용이 첨가된다퍼즐 판이 흔들리거나 다른 버전에서 갑자기 끌고 오는 (막장드라마 같은건 없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일본 불참을 던진 시기는 적절했다책에서 주어진 시점은 1979, 1988, 2012년 이렇게 세 시기로 나뉘지만 챕터가 바뀌고 화면이 바뀌고서는 어느 지점인지 모른다하지만 간접적으로 던져진 시대상을 보면서 추측할 수 있다주인공도 추측을 하기 때문에 수수께끼를 같이 푸는 듯한 느낌 또한 받을 수 있다또 범상치 않은 대사를 던지면서 책을 덮지 못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부탁인데요방금 본 거잊어주세요.”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곤란하지만아무튼 틀림없는 얘기예요.” + 당시 분위기나 풍토그 감성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실제로 이 책을 보고서 John Lenon의 명작 image를 들었다.)

 

 

 

혼자서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나미야 잡화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쩌면 뭔가 좋은 충고를 해주시지 않을까한 가닥 희망을 담아 이렇게 상담 편지를 보내기로 했어요.” - 달 토끼

 

 

 “할아버지게게게의 기타로 필통 들어왔어요?” 상담 개시 초반에는 이런 류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하지만 폴 레논이 야반도주라는 중대한 사안을 고민으로 들여오자 이야기가 달라진다점점 고민의 양과 질이 발전하고 가게는 이슈화된다결국은 2개로 점철된다환광원과 나미야 잡화점둘의 관계는 자전거 2개의 휠(Chain Wheel, Free Wheel)과도 같다둘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한쪽이 기어변속을 하게 되면 상호작용을 한다하나의 휠로 초점을 맞추자면 원자의 구성처럼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나미야 잡화점 속의 핵심인 할아버지와 삼총사가 있고전자와 같이 그동안 스쳐갔떤 사람들이나 편지가 돌고 있는 것이다이런 것이 동심원을 그리듯이 돌면서 나미야 잡화점을 구축하는 것이고두 휠(원자)이 합쳐서 본체(나미야 잡화점》 세계관)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후반부 얽히고 설킨 것의 시초를 알고 나니 허탈했다이런 plentiful하고 diverse한 이야기가 결국은 남녀 간 어릴 적의 한순간의 사랑 때문에너무 진부하잖아?

 

 하지만 역을 reverse를 하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그들의 짧은 사랑으로 이 모든 게 이뤄졌다나는 이런 진부한 얘기가 만드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비견하여 어떤 것을 창출했는지 자문해봤다나미야 할아버지는 오히려 번거로우니까 더 보람이 있지.”라면서 상담자에게 관심을 쏟았다.

 

 Heath 형제의 책 스틱처럼세상을 더 사랑스럽게 바라보고작은 하나하나의 힘이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따뜻한 햇살 같은 공동체적인 사랑을 만드는 것이다보아라생선 가게 뮤지션의 소박하고도 정성스러운 노래가 미친 나비효과를히로시가 받은 관심과 따뜻함으로 인해 환광원의 부활의 서막이 열리는 것을.

 

 일본 소설이라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가게에 인상이 쏠려있던지라 여러 군데에서 보게 됐다다른 차원이지만 폴 레논이 진지한 상담의 시초인 것을 볼 때 반가웠다그로 인해 우유상자와 셔터 우편함이라는 문화가 생겼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족족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감상의 폭이 좁아지는 면이 있었다.)

 

 

  

 

그로부터 두 달여 만에 세계경제계에 일대 격진이 일어났다미국에서의 플라자 합의에 의해 단숨에 엔화 강세달러 약세가 진행된 것이다하루미는 소름이 돋았다.

 

 

 TV 드라마 응답시리즈처럼 특정 연도에 대한 사회상을 곳곳이 담아낸다이미 익숙해져있고 친근해진 주인공을 그 상황에 던짐으로써 더욱 실감나게 한다주인공들이 겪는 일이 사후적 해석으로 가득 찬 논문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한 통계나 수치의 일례가 아니라지금 눈앞에서 살아숨쉼이 느껴진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앞두고 죽어가는 연인 앞에서 내려야하는 결정의 순간에서 느껴지는 고뇌도시화의 범람 속에서 소외되는 농촌의 작은 가게폴 레논의 어머니가 자주 찾던 생선가게 우오마쓰’... 시대를 상징하는 장면들이다.

 

 인생을 영화같이 살라고 했던 말이 있다지금 지하철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그저 스마트폰하는 사람등산하고 와서 조는 사람책을 보는 사람이지만 개개인마다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삶의 응축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답장 말이야이대로는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

“ 다른 사람의 고민을 상담해준 거지금가지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야.” “나 같은 게나 같은 바보가.” -고헤이

 

 

 이런 편지를 내가 받는다면 어떨까멘탈이 탈탈 털릴 것이다자존심이 해서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생선 가게 뮤지션 일화를 보면서 계속 내게 돌직구를 날리는 것 같았다또 거기에 할 말 없는 나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다름 아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인 것이고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마지막을 보라삼총사가 2012년 9월 13일의 기이한 현상을 실험하기 위해 낸 백지의 답장이 나미야 할아버지에게서 온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그에 응답하듯이 삼총사는 눈빛을 반짝인다삼총사처럼 능력이 안 되니 불만과 화가 많아졌던 차에보다 너그럽고 자애로운 마음가짐을 갖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 그 문장을 읽는 순간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왜냐하면 제 속마음은 그만큼 순수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좀 더 교활하고 좀 더 추하고그리고 시시한 것이었죠.“ - 달토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배우는 것이다환광원이라는 다소 불우한 환경의 사람들이, - 비록 생산 가게 뮤지션처럼 불행한 면이 있더라도 – 스스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인생역전까지도 가능하게 보여준다삼총사의 반짝이는 눈이 이를 강조해준다9월 13일 마술같은 하루의 진실 따위는 상관없다나미야 잡화점이 상담을 게시한 것그리고 할아버지 기일 33주년을 맞이해서 하루 동안 부활한 것편지로 말미암아 그 사이에 무수한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있는 것내게 남은 것은 이것뿐이다.

 

 

9.5/10.0

 


P.S.


- 나미야 할아버지랑 환광원 초대 원장의 관계는 놀랍게도 어제 봤던 영화 Before Sunset이랑 남녀 관계가 똑같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영상미도 그렇고 굉장히 걸작이 될 것이다많은 내용의 편집이 관건이겠다이 대사는 꼭 넣길 바란다. “사나이 대 사나이의 약속은 지켜야지.”

 

- 부모님에 대한 존재 자체와 그들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히스 형제 빠돌이인가Decisive스틱을 읽고 썼나아니면 책 스틱이 핵심적인 메시지효과적인 표현방법을 잘 짚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나미야 잡화점이 그의 한 예인 것이고덕분에 나도 복습을 하게 됐다. story가 있으니 캐릭터 몰입이 훨씬 쉽다.

 

- 다른 책과 달리 술술 읽히니까 중간에 뭉텅이로 빼놓고 읽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자세한 묘사그걸 머릿속에 그리는 기쁨을 가지려면 즐겨야겠다.

 

- 일본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그 정서... 영상미 있는 일본영화를 이번주 일요일에 봐야겠다 ^^

 

- 옮긴이의 말을 나중에 봤는데 추리소설 작가라는 걸 처음 알았다. 본래 그 작가의 성향과 변천과정을 보는 거도 재미가 쏠쏠하겠다.




remarkable cla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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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가수로 데뷔하지 않아요?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다애매한 웃음으로 얼버무린 것도 십 년여 만이다하지만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우선 마음가짐부터 전혀 다르다.

아버지하고 밤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미안해나는 아직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네.

가쓰로의 생각은 팔 년 전으로 날아갔다.

 

 _

... 프로 가수가 되면 좋을 텐데라는 말을 듣는 일도 많았다.

아뇨아뇨하고 겸손하게 손을 내저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네에물론 나도 프로 가수가 되고 싶죠'라고 쏟아붙였다대학을 중퇴한 것도 그것 때문이였다.

 

 _

"당연하지자신 없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어." 대답하면서도 내심 껄끄러움을 느꼈다자신을 위장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_

"그래난 음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그래서 물어보잖아어떠냐고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좀 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봐어떤 계획이 있는지앞으로 어떻게 진행도는지그리고 언제쯤이면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는지그걸 하나도 모르니까 나도 그렇고 아버지하고 엄마도 불안해하는 거야."

 

_

"오호가쓰로건강해 보이는 구나.. 아직 도쿄에 있다면서요즘 뭐하고 지내냐?"

"이것저것."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_

가쓰로는 다시 한 번 편지를 읽어보았다저도 모르게 진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하긴 틀린 말도 아니지그런 마음이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읹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말투는 거칠지만 이 편지에 담긴 말들은 진실을 꿰뚫고 있었다.

특별한 빛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 알아봐준다.

가쓰로 스스로 잘 알면서도 지금껏 외면해온 사실이다단순히 아직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왔지만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운 따위는 별로 필요로 없을 것이다.

 

 _

그런 훌륭한 말은 뭔가 한 가지라도 성공한 다음에 해야지 너지금가지 음악 하면서 뭐든 하나라도 성과를 냈어아직 아무것도 못했지부모 말을 무시하면서까지 한 가지에 몰두하기로 결심을 했으면 그만한 것을 남기라는 말이야내 말은그것도 제대로 못한 사람이 생선 가게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거야말로 크게 실례되는 소리다.”

 

 _ 

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인 채로 말했다. "그럼 신세좀 져야겠다."

다카유키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마침내 이런 날이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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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읽을 즈음에는 이미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참으로 섭섭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만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게다가 섭섭하다고 느낄 줄 아는 내 마음도 이미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 나미야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김 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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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머리 위에는 온통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언제라도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그렇게 믿고 지냈다하지만 언제부터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그 변화가 이른바 암운의 기처깅었다는 것을 깨달은 건 70년대가 시작된 해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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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포드 선더버드는 어느 틈에 차고에서 보이지 않았다이제 아버지는 전차를 타고 회사에 나갔다어머니는 더 이상 쇼핑을 나가지 않았다그리고 두 분 모두 항상 화가 나 있었다.

 


고스케는 자신이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 잘못 섞여든 작은 강의 물고기인 것만 같았다이런 거대한 세상이 있다이런 곳에서 인생을 구가하는 사람들이 있다하지만 자신과는 인연이 없는 세계였다자신은 좁고 어두운 강에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게다가 당장 내일부터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강 밑바닥에서 살아야 한다.

고개를 떨구고 그곳을 떠났다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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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틀스 음반을 모조리 팔아치우려는지 고스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어쩐지 이제 자신은 더 이상 비틀스를 들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하나의 계절이 끝나버린 듯한 기분이라고 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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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자신을 이어주던 끈은 이미 끊어진 것이다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봐도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다함께 있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그것을 비틀스가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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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인생이란 혼자만의 힘으로 개척해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인가내심 경멸해왔던 부모님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 어떤 꼴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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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뒤에는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방충망이 쳐진 창문으로 밤하늘에 동그란 달이 떠 있는 게 보였다내일도 날씨가 맑을 것 같다.

 

 

펜싱은 원 없이 해봤으니까 이제 됐어모스크바 올림픽을 목표로 내 안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어저세상의그 사람도 아마 허락해줄 거야." 그렇게 말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다음을 생각해야지우선 회사 일을 열심히 할 거야그리고 좋은 사람도 찾아볼 거고."

 

▶ 1. 목표가 있어야 함. 2. 원 없이 해봐야 함. 3. 안되면 바로 다음 것을 생각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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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 모두 절박한 처지에 내몰려 그 울분을 어딘가에 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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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귀중한 지표를 건네주신 거예요게다가 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말씀이었습니다어떤 공부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어떤 분야에 뛰어들어야 하는지어떤 것은 끝까지 붙들고 있고 어떤 것은 때맞춰 놓아버려야 하는지아주 상세히 알려주셨어요. - 길 잃은 강아지의 편지